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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하게 말해본다. 봄이 왔다고. 아파트 화단가 나뭇가지 끝에 꽃망울이 피어올랐다. 서로를 위로하듯 사진을 찍어 소식을 전했다. 작은 화면으로 봄의 기운이 전송됐다. 우리는 잘 건너왔다고 금요일 밤, 한 시간째 오지 않는 통닭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봄이 왔네. 오지 왜 안 와? 그러게 말이야. 이 계절의 시작은 『창작과 비평 175호 2017년 봄』으로 열기로 한다. 목차를 열어보고 우선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으로 마음은 달아오른다. 황정아의 「민주주의는 어떤 기분 인가』에서는 가만히 있음 을 김금희의 소설들과 연결 짓는다.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말 잘 듣는 우리는 서로를 믿고 구명조끼를 나누어 입고 기다렸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배가 기울까 봐. 김금희의 소설 「조중균의 세계」의 세계는 가만히 있음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이다. 가만히 앉아서 교정을 보겠다는 조중균 씨에게 가해지는 압박과 눈총은 그를 아무것도 하지 않음 의 세계로 도달하게 한다. 두 세계에서 명령하는 가만히 있음 과 가만히 있지 말라 라는 충돌은 믿어야 할 진실도 정의도 없는 세계에 사람들을 던져 놓는다. 김금희의 장편 연재 1 『경애(敬愛)의 마음』의 공상수와 박경애는 같은 팀원이 된 기념으로 고기를 먹으며 회식을 한다. 급하게 친해지고 싶은 상수와 알아서 친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의 경애. 회식 자리는 결국 상수를 제이에스로 만든다. 제이에스, 진상. 미묘하게 대화가 어긋나고 화를 내야 하나 화를 내면 쪼잔하게 보일 텐데, 참아 버리자, 참는데 화는 난다 식의 두 인물의 회식 풍경은 자꾸 마음이 쓰인다. 공상수와 박경애가 어떻게 영업일을 하고 좁은 공간에서 회사 생활을 할지 궁금하다. "원래 그렇게 삐딱합니까?" "삐딱한 거 아닌데요." "아니, 나는 옛날부터 기억이 있다. 박경애씨에 대해서 이런 저런, 그렇게 말하고 있잖습니까?" "저도 그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좀 친해집시다." "네. 친해지세요." 이런 식이면, 곤란할 것 같기도 하다. 김려령의 『청소』는 모든 청소를 끝내고 엄마가 가는 곳이 어디일지, 그 끝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 착잡한 소설이다. 일주일에 걸친 청소가 끝나고 만 원만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만 원을 쥐여주고 나가는 엄마. 묘사는 오래 남는다. 봄의 시작이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사람의 찡그린 얼굴로 기억되듯이. 「가리는 손」에서 김애란식 모성은 2만 원이나 하는 갈치를 태우며 의심을 끝내는 것으로 보여준다. 커 가는 아이가 보이는 변화와 자식임에도 그 속을 다 알 수 없는 의문을 잠재우려는 의식은 담담하다. 아이에게 가리는 손의 위치를 알려준다. 라이언 인형을 다시 가져가기 위해 화면에 등장하는 재이. 엄마가 아는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는 나입니다, 재이의 거짓말은 그것을 말하기 위한 것인 줄도 모른다. 한홍구 역사학자의 「촛불과 광장의 한국현대사」는 잘 읽힌다. 한홍구 선생의 글들을 읽으며 감탄하는 지점은 쉽게 쓰고 잘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이다. 허구의 세계에서 촛불과 구호로 가득한 세계로 넘어왔다. 흙수저로 수식되는 세대들이 펼치는 광장의 사회학을 다룬 이 글은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자신들보다 어린아이를 구해 달라는 애부터, 애부터 라고 외쳤다는 부분에서 이 봄이, 따듯하고 빛의 호위로 둘러 싸일 봄이, 정말 와도 좋은 걸까 괴로운 마음이 들어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노력과 성실, 근면, 도덕책에나 나올만한 말들로 살아가기에는 무릎이 꺾이는 시대에 흙수저도 없는 무수저들은 모였다. 광장에서 환히 불 밝히고 바람 불면 꺼진다는 촛불을 재치와 센스 만점으로 바꾼 LED 초를 들고 흔들면서. 소설가 정미경을 추억하는 두 편의 글에서 살고 있는 자들의 비애를 느낀다. 우광훈의 소설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에 등장하는 뽑기 귀신 노인의 말처럼 누군가는 떠나고 남은 자들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서 위로를 받으며 살아 갈 것이다. 그녀가 남긴 글들이 가족을 위해 소설을 위해 살아간 삶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이렇게 책만 읽어서야 되겠어. 사람들은 빈정거림과 비꼬는 말들로 읽는 행위를 폄하하곤 했다. 쓰진 않지만 읽습니다. 읽고 말을 듣습니다. 위반 사실과 잘못된 사항들을 조목조목 밝혀 읽는 자가 있어 우리는 들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자 우리의 시대는 어제와 다른 시간으로 이동했다.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가 출간되었다. 창간 50주년을 맞은 지난해 다양한 기획을 이어간 ‘창비’는 이제 새로운 50년을 향해 출발한다. 이번호에서는 특히 지금 한국사회의 ‘핵심현장’인 촛불광장에서 벌어지는 ‘혁명적 움직임’에 주목했다. 사회원로부터 청년세대에 이르는 다양한 필자들이 폭넓은 시야로 촛불의 현재에 대한 냉철한 고찰과 촛불 이후에 대한 다양한 전망을 담아내고자 했다. 문학 부문 역시 주요 작가들의 신작을 비롯한 다양한 기획을 통해 ‘문학 중심성’ 강화라는 당초의 다짐을 이어나가는 다채로운 장을 마련했다.

창작과비평 175호(2017년 봄호) 목차
책머리에
한기욱 / 블랙리스트와 ‘이면헌법’ 없는 세상을

특집_촛불혁명, 전환의 시작
백낙청 /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유철규 / 기로에 선 세계경제와 우리의 선택
황정아 / 민주주의는 어떤 ‘기분’인가: 김금희와 황정은의 최근 소설들
[대화] 우지수 이지원 이진혁 천웅소 /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둑을 허문 청년들


김광규 / 조선 닭 외
박라연 /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외
송태웅 / 무언극 외
유진목 / 벤자민 외
이기성 / 마르크스를 훔치는 시간 외
이기인 / 수제비 외
이제니 / 가장 나중의 목소리 외
장수진 / 루아르강의 이방인들 외
조용명 / 사람이라서 외
황성희 / 시간의 능력 외

소설
김금희 / 경애(敬愛)의 마음 (장편연재 1)
강영숙 / 두고 온 것
김려령 / 청소
김애란 / 가리는 손

작가조명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
신미나 / 빛의 호위 를 보는 다섯개의 초점: 조해진의 카메라 옵스큐라

문학초점
손택수 정주아 김언 /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문학평론
박상수 / 발칙한 아이들의 모험에서 일상 재건의 윤리적 책임감으로: 2010년대 시와 시비평에 관하여

현장
한홍구 / 촛불과 광장의 한국현대사

논단
낸시 프레이저 / 자본과 돌봄의 모순 (번역 문현아)
안병옥 / ‘섭씨 2도’와 인류의 미래: 기술낙관론을 비판하며
구갑우 / ‘핵무기의 문학’으로 회고록 읽기

산문_고(故) 정미경의 삶과 문학
정이현 / 다음. 다음이라는 건 없다는 말
정지아 / 저 깊은 다정과 치열

촌평
하대청 / 멜린다 쿠퍼 잉여로서의 생명
양효실 / 한우리 기획·번역 페미니즘 선언
남상욱 / 나쯔메 소오세끼 이 몸은 고양이야
이필렬 / 오철우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학철 / 김근수 외 지금, 한국의 종교
김 현 / 정희진 외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염동규 / 차미령 버려진 가능성들의 세계

독자 리뷰
문병훈 / ‘창비’를 다시 만나다
이주혜 / 벽돌처럼 묵직하고 단단한

제15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
육호수 / 시 부문_해변의 커튼콜 외
박규민 / 소설 부문_조명은 달빛
정희정 / 희곡 부문_명주
한 설 / 평론 부문_석양이…… 진다

창비의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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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L 175호(2017년 봄호) 목차
책머리에
한기욱 / 블랙리스트와 ‘이면헌법’ 없는 세상을

특집_촛불혁명, 전환의 시작
황정아 / 민주주의는 어떤 ‘기분’인가: 김금희와 황정은의 최근 소설들


김광규 / 조선 닭 외
박라연 /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외
송태웅 / 무언극 외
유진목 / 벤자민 외
이기성 / 마르크스를 훔치는 시간 외
이기인 / 수제비 외
이제니 / 가장 나중의 목소리 외
장수진 / 루아르강의 이방인들 외
조용명 / 사람이라서 외
황성희 / 시간의 능력 외

소설
김금희 / 경애(敬愛)의 마음 (장편연재 1)
강영숙 / 두고 온 것
김려령 / 청소
김애란 / 가리는 손

작가조명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
신미나 / 빛의 호위 를 보는 다섯개의 초점: 조해진의 카메라 옵스큐라

문학초점
손택수 정주아 김언 /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산문_고(故) 정미경의 삶과 문학
정이현 / 다음. 다음이라는 건 없다는 말
정지아 / 저 깊은 다정과 치열

촌평
하대청 / 멜린다 쿠퍼 잉여로서의 생명
양효실 / 한우리 기획·번역 페미니즘 선언
남상욱 / 나쯔메 소오세끼 이 몸은 고양이야
이필렬 / 오철우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김학철 / 김근수 외 지금, 한국의 종교
김 현 / 정희진 외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염동규 / 차미령 버려진 가능성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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