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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of Eden

천송희 2024. 1. 22. 17:02


우선, 스타인벡은 자신의 다른 책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한 연습일지도 모른다는 말로써, 이 책은 그가 생각하는 그의 역작인 것 같다. 하지만, 생쥐와 인간, 캐너리 로우, 진주 보다 문학적 표현이 많아, 쉽게 익히지는 않는 것 같다. 성경의 창세기는 하느님의 창조와, 더불어 창조된 인간들의 타락과 믿음, 그리고 그들의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길고 긴애증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 애증 속에서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창세기의 매력은 아마도 어떠한 사람도 각자의 가족 관계에서 비롯되는 애증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 속에서 우리에게 굴곡진, 어느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부끄러운 가족사에서 하느님을 통해 가족을 다시 껴안을 수 있는 은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후에 자식들을 가지는 데, 그 중에 카인과 아벨 낳았다. 카인과 아벨은 하느님께 제물을 올렸는데, 유독 카인의 제물을 하느님은 받지 않으셨고, 카인은 아벨을 탓하며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다. 이후에 하느님은 카인을 부르는데, 카인에게 세상을 떠돌며 헤메는 형벌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카인이 하느님께 말씀드리자, 다른 사람이 카인을 해치지 못하도록 카인에게 표를 찍어주셔서 그를 헤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부분에서 가톨릭에서 형법상의 사형을 반대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몇가지 것들을 보여준다. 하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로 부터, 어떤 조직으로부터 거부 당한다는 건 기분좋은 일은 아닌데, 어른이 되기전, 부모로부터, 다른 형제들과 비교되어 거부당한다는 느낌을 아이가 주관적으로 가질때, 그것은 자신의 전 존재의 부정이요, 사랑받지 못함임과 동시에, 사랑받고자 하는 경쟁관계를 유발할 수 있다.(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의 주요 논지가 아닐까 한다.) 두번째는, 배워야할 감정적 대응방식(emotional response)이다. 거부당했다고 누구나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진 않으며, 상대방을, 상대방의 것을 해하는 것이 곧 내 것이, 내 존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과 꼭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가 카인의 입장에 놓여 본다면, 자신의 존재감이 상처받고 멍드는 것에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다. 멍든채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단, 상처받은 감성을 해소하기에 급급한게 인간이기도 하다. 성경의 창세기는, 최초 인류의 믿음의 역사이자, 하느님의 시험이기도 한데, 믿음의 원형이 되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는 지극히 불완전한 사람들이였다. 처음에 나타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나중에, 이사악의 아들인 에사우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과 요셉을 통해서도 다시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신앙이 인간의 가족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야콥은 태어날때부터, (태줄에 있을때부터,) 에사우의 발목을 잡고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성격은 태어날때 부터 타고난것으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한다. 야콥은 아버지 이사악이 형 에사우만을 아꼈기에, 아예 아버지를 속여, 에사우의 장자 상속권을 얻어내고, 고향으로부터 쫓겨나, 그의 먼 귀향 살이를 시작하는 데, 나중에 돌아와서도 돌아온 야곱을 맞이하는 형을 믿지 못하고 경계했으며, 그는 자식들 중, 막내인 요셉을 유난히 편애했다. 요셉이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의 자식이기도 했겠지만, 막내인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또 다른 투영으로 보이는 건, 야곱이 죽을때, 굳이 요셉의 아들들인, 그의 손자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장면에서 알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야콥이 유난히 막내인 요셉을 편애하자, 그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는 음모속에, 결국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좀더 다른 모습들로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결국 마지막 요셉의 신앙고백으로 창세기는 마무리가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형제자매관계 속에서 갈등은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물질적인 재산이나, 다른 것들로 풀려지는 것도 아니요, 형제자매 관계가 좋다면, 그건 축복을 받은 것이라 생각되고, 그렇지 않다면, 기나긴 창세기의 역사를 한번쯤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갈등은 어른이 되어서 나타는 것이 아니라, 어릴적, 부모님이 신처럼 전지 전능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때, 그 때부터 말이 되지 못한채 쌓이고 엉켜온 것들이 아닐까 한다. 두 세대를 거쳐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재해석 하면서 결국 인간은 선택에 놓여있음을 말하고자 하나, 조금은 안타까운 것은 이야기의 원형을 빌어다 썼기에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안 이상,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진단 것을 예상하는 것에 조금은 맥이 풀리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스타인 벡이 소설의 막바지에서 보여주는 인물들 속에그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 있지 않을까 한다.
강렬한 사회의식과 휴머니즘으로 미국문단에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세운 스타인백의 대표작. 캘리포니아의 황무지에서 낙원의 건설을 꿈꾸며 살아가는 한 일가를 통해 그려낸 선과 악의 대서사시이자 휴머니즘의 걸작이다.

There is only one book to a man Steinbeck wrote of East of Eden, his most ambitious novel. Set in the rich farmland of Salinas Valley, California, this powerful, often brutal novel follows the intertwined destinies of two families - the Trasks and the Hamiltons - whose generations helplessly re-enact the fall of Adam and Eve and the poisonous rivalry of Cain and Abel. Here Steinbeck created some of his most memorable characters and explored his most enduring themes: the mystery of identity, the inexplicability of love and the murderous consequences of love s ab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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