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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시대에만 의녀(醫女)가 존재했을까
조선시대에만 존재했던 특이한 직업가운데 하나가 의녀(醫女)다.
왜냐하면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남자의원이 여성을 치료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의녀(醫女)가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1) 그런데 조선이 건국되면서 사정이 변했다.
성리학을 이념적 배경으로 탄생한 조선에서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여성이 남성을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외법(內外法)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조선이 건국하고 14년 만인 태종 6년(1406)에 내외법(內外法)을 고수하면서도 여성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녀(醫女)를 양성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의녀(醫女)의 한계
문제는 의녀(醫女)가 되기 위해 선발한 이들이 관비(官婢)였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3품 당하관인 내의원 정(內醫院 正)까지 승급할 수 있는 남자의사들과는 달리 여자의사인 의녀(醫女)는 별도의 품계 없이 일부가 급료를 받는 정도에 그쳤다.
그나마 의녀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능력에 따른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면천(免賤)의 포상이다. 예컨대 이 책에서 언급한 숙종의 빈궁(嬪宮)이나 중전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면천(免賤)되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종 10년(1669) (현종의) 어머니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온천에 갈 때 수행한 것과 관련하여 의녀 단춘(丹春), 정옥(正玉), 지향(芝香) 등은 면천을 받았고, 같이 참여했던 의녀 국향(菊香), 예환(禮環) 등은 쌀과 면포만 지급받았다.2)”는 기록처럼 예외가 존재한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은 의녀(醫女)의 신분이 재물 취급 받는 노비였다는 점에서 오는 것에서 보이며, 그 때문에 연산군 이후 ‘약방기생(藥房妓生)’이라고 불리며 연회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러한 행태는 측근들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 이후에서 이어져, 의녀(醫女)들은 크고 작은 국가 연회에 동원되었고, 심지어 양반집 잔치에 불려 다니기도 했다.
의녀(醫女)는 어떻게 전문가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런 의녀(醫女)는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받을까?
내의원(內醫院) 등을 관할하는 예조(禮曹)에서는 먼저 의녀(醫女)가 되기 위해 뽑혀온 자들에게 <천자문(千字文)>, <효경(孝經)>, <정속편(正俗篇)> 등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는 “제생원(濟生院)에서 의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글자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료인으로서 인품과 인성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였다.3)” 이를 초학의(初學醫)라고 하는데, 대략 3년의 기간 동안 진맥법, 약의 제조법, 침구법(鍼灸法) 등의 기초공부를 한다. 현대식으로 따지면 의대생에 해당한다.
이 다음 단계가 의원을 보조하며 여러 질병에 대해 익히는 과정인 간병의(看病醫)다. 오늘날 레지던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모두 20명을 두되 성적이 뛰어난 자 4명에게만 급료를 지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간병의(看病醫)에는 일종의 연령정년제가 적용되었는데, 마흔 살이 지날 때까지 전문 분야(진맥, 침과 뜸, 약)를 갖지 못하면 관비(官婢)로 돌아가야 했다.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노비의 딸로 사는 것보다는 의녀로 사는 것이 나았다. 의관보다 대우받지 못하고 일의 성격에 따라 차별도 매우 심했지만, 경제력과 면천의 기회를 통해 사회적으로 보다 나은 지위에 오를 수도 있었다. 의녀는 사회 활동을 했으며 활동의 범위도 넓었다.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고4)”,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실력을 인정받으면 달마다 급료를 받는 내의(內醫)로 발탁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의녀(醫女)가 되는 과정마다 경쟁이 치열했고, 수련 과정에서 탈락하는 이들도 많았다.
의녀(醫女)가 근무하는 곳
“의녀는 소속기관에 따라 크게 혜민서(惠民署) 의녀와 내의원(內醫院) 의녀로 구분된다. 혜민서는 궐 밖에 위치하기 때문에 궐 안의 내의원, 즉 내의사(內醫司)와 구분하여 외의사(外醫司)라 불렀다. 내의원 소속 의녀를 내의녀(內醫女)라 하였고 혜민서 소속 의녀는 외사의녀(外司醫女) 혹은 외의녀(外醫女)라고 하였다.5)”
이렇게 의녀는 약방(藥房)이라고 불리는 내의원(內醫院)이나 혜민서(惠民署)에서 근무하지만, 때에 따라 설치되는 특설 관청에 파견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산실청(産室廳)과 호산청(護産廳)을 들 수 있다.
“산실청은 왕비의 출산을 위해 때에 맞춰 임시적으로 마련되는 산실로서 의관과 의녀가 배치되어 해산을 도왔다. 의녀는 분만에 직접 참여하여 산파 노릇을 하였다. 왕비나 세자빈이 아이를 낳을 때에는 산실청을 설치하고, 출산을 도운 경험이 있고 전문성을 갖추었으며 의술이 뛰어난 내의원 어의녀를 산실청 의녀로 뽑았다. 또한 후궁의 출산을 위해서는 호산청을 설치하였다. 이때도 역시 의녀가 참여하였다. 6)”
궁궐에서의 출산은 종묘사직의 안위와 직결되는 일이었으므로 중요시되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침이나 뜸에 뛰어난 의녀보다는 출산을 도운 경험이 많은 의녀가 필요했다.
그 밖에도 종기(腫氣) 치료를 위한 치종청(治腫廳)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종기(腫氣)가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질병이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 가운데 종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 임금이 적어도 다섯 명에 이른다. 문종(文宗), 성종(成宗), 효종(孝宗), 현종(顯宗) 그리고 정조(正祖)7)”가 바로 그들이다.
게다가 노출된 털이 있는 부위에 잘 생기는 종기(腫氣)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 치료를 위해 의녀가 파견될 수 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의녀(醫女), 팔방미인(八方美人)이 되다.
의녀(醫女)는 진맥, 침과 뜸, 약을 다루는 의사역할뿐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수사하고 조사하는 수사관 역할도 해야 했다. 즉, 범죄와 관련하여 여성의 상처를 조사해 사건 담당 기관에 보고하고, 때로는 여성의 시체를 검시하기도 했던 것이다. 심지어 여성 범죄 혐의자를 수색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는 방학기의 만화 <다모(茶母)>에서 나오는 조선 후기의 여형사 다모(茶母)와 영역이 일부 겹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범죄행위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혼인집에 찾아가 사치품이나 부정한 폐물, 예물이 있는지 조사하는 일도 했다. 의녀들은 이 일을 무척 좋아했다. 천한 신분으로 부잣집에 가서 위세를 부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8)”
그 밖에도 친잠례(親蠶禮)에 참여하여 왕비를 시중드는 시녀(侍女)의 역할과 죽은 궁인의 제사 때 제문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연회에 참석하는 기녀에게 글과 시를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마저 해야 했다. 흔히 말하는 ‘르네상스적 만능인’이 되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처럼 의녀(醫女)는 ‘여성’과 ‘노비’라는 주홍글씨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탄생한 당당한 전문직이었다. 비록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가부장적 성리학적 사회였기에 의녀(醫女)로서의 재능보다 기녀(妓女)로서의 재능이나 외모를 더 인정받는 한계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녀(醫女)가 당대(當代)에 전문지식을 가진 직업여성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 한희숙, <의녀>, (문학동네, 2012), p. 14
2) 한희숙, 앞의 책, p. 91
3) 한희숙, 앞의 책, p. 39
4) 한희숙, 앞의 책, p. 92
5) 한희숙, 앞의 책, pp. 19~20
6) 한희숙, 앞의 책, pp. 57~58
7) 한희숙, 앞의 책, p. 62
8) 한희숙, 앞의 책, p. 125
‘키워드 한국문화’ 총서의 열한번째 책. 이 책은 한국 의학사에서 무척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인 의녀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저작이다. 많은 인기를 누렸던 〈대장금〉 등의 드라마를 통해 의녀는 대중적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얻었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의녀의 실체에 다가가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의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료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저자 한희숙은 경국대전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사료에 흩어져 남아 있는 의녀 관련 기록과 풍부한 도판을 바탕으로 더불어 조선시대의 특수 직업이었던 의녀의 세계를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머리말
1. 의녀의 탄생 배경
남녀가 유별한 시대 │ 의녀 제도의 설치 과정 | 의녀가 소속된 의료기관
2. 의녀가 되기까지
의녀의 교육 과정 │ 의녀가 전문화되는 과정
3. 의녀의 역할과 활동
의녀의 전문 분야 │ 특별 시설에 파견된 의녀 | 의녀의 의료 활동―치료, 간호, 간병
4. 의녀의 대우
급료 지급 및 복호 │ 물질적 포상 │ 면천
5. 이름난 의녀들
성종 대 장덕, 귀금 │ 중종 대 대장금 | 선조 대 애종, 선복
6. 의녀의 또다른 역할
약방 기생 │ 수사관 │ 시종 | 사라지는 의녀, 새로운 여의사?간호사의 탄생
주
참고문헌
키워드 속 키워드
1 조선시대 의과 제도와 의원 │ 2 왜 관아의 여종을 의녀로 만들었을까? | 3 호산청일기 │ 4 의녀의 헤어스타일 │ 5 의녀의 직급은 어떻게 구분되었나? │ 6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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