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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눈물을 닦다

천송희 2023. 10. 5. 15:28

그림이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그림은 어려운데, 그 상징성이나 추상은 재미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과 이해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이 필요한 듯 싶다. 로댕의 <신의 손>을 보고도 누구는 신의 사랑을 떠올리고, 누구는 속박과 벗어나는 자유를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로댕의 신의손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신 안에서 참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것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제우스에게 저항한 프로메테우스. 그 대가로 독수리에게 계속해서 간을 쪼이는 벌을 받았지만, 의미를 발견하고 존재를 증명하였다. 예술가들이 프로메테우스를 자신의 분신으로 삼는다고 한다. 기존의 것에 저항하는 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는 것만이 무의미한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카뮈의 사상과도 연결된다. 예술가들은 프로메테우스에게서 현재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을 보았고, 몰이해와 온갖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살았던 인간의 의지와 저항정신을 보았다고 한다. 사랑. 사랑은 원래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자기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도 문제이지만, 자기애가 튼튼하게 받쳐주지 않는다면 삶은 매우 불안하게 흔들릴 것이고, 지지와 확신을 주는 타인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에서는 남녀가 얼굴을 가리고 키스하고 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한 완전한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의미에서 모든 사랑은 오해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오해이지만 동시에 상상력이다. 우리는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갖고 있으므로 사랑을 할 수 있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는 사랑했던 연인과 함께 누웠던 침대 사진이다. 두 사람이 함께 누워있었던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난 빈자리의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그 사람이 사라졌기에 더욱 소중하게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연인이 사라졌기에 우리의 사랑은 더욱 완전해졌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반고흐의 <슬픔>은 슬픔에 빠진 시엔이라는 여성을 그린 그림으로, 고흐는 그녀를 동정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갖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녀 곁에서 행복해하는 고흐를 태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슬픔은 공감의 통로가 되어준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 것처럼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작품과 대화할 통로를 알지 못한다. 고통과 상처는 우리안에서 가시처럼 머문다고 한다. 에바 헤세의 <액세션>은 수많은 가시로 이루어진 네모난 상자이다. 이 모습이 우리의 내면이라는 말일까. 상처가 많은 사람은 내면에 수 많은 가시들로 박혀 있어, 내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또 상처를 내고 만다. 고야의 <막대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은 현실의 비극성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몽둥이를 들고 싸워야 하는 현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고, 그렇게 누군가가 쓰러질 때까지 몽둥이질을 해야 하는 비극성이라 한다. 잔인한 세상에 대한 회화적 은유로 볼수록 몸서리쳐지는 예술적 고발이라 한다. 자코메티의 <광장>에는 뼈대만 남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그들은 몸은 부서지거나 흔들릴지언정 쉽게 넘어지지는 않는다. 녹록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려 애쓰는 인간의 모습은 감동적이라 한다.    

점점 작아지는 내 모습에 미칠 것 같다면, 사랑을 앞에 두고도 망설여진다면, 쌓이고 쌓인 상처, 도저히 치유할 수 없다면, ‘눈물 닦아 주는’ 그림을 만나라 심리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평론가 조이한의 그림 심리 에세이. 고전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우리의 지치고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작품들을 담았다. 사랑, 결혼, 관계, 슬픔, 상처, 자살, 삶의 비극성, 외모 콤플렉스, 늙음과 죽음 등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들을 그림을 통해 성찰한다. 모딜리아니의〈모자를 쓴 여인〉을 통해 우리는 결코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는 관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카라바조의〈나르시스〉와 마그리트의〈연인〉을 통해 자기애와 상상력이 사랑의 본질임을 말한다. 자코메티의 조각〈광장〉에서는 고단하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삶의 감동스러움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덮어놓고 괜찮다고, 힘내라고 위로하는 대신 그림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삶의 진실을 조용히 응시한다.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이야기들은 묵직한 위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긍정할 수 있는 희망을 전해 준다. *

들어가는 말_그림이 건네주는 삶의 위안과 기쁨
프롤로그_내 식대로 마음이 끌릴 자유, 누구에게나 있다
-오귀스트 르네 로댕의〈신의 손〉

PART 1 미칠 것 같다면, 세상에 나를 소리쳐

저항, 무의미한 삶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
-베첼리오 티치아노의〈프로메테우스〉

살아 있음의 절규! 나를 잊지 말아요
-아나 멘디에타의〈무제〉,〈신체적 특성〉,〈멕시코에서의 실루엣 작업〉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내가 아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모자를 쓴 여인〉
-알베르토 자코메티의〈안네트의 초상〉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제임스 엔소르의〈가면에 둘러싸인 엔소르〉
-질리언 웨어링의〈나는 절망적이다〉

PART 2 주저된다면, 사랑마저 반역할 것

사랑은, 상대의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는 것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나르시스〉

모든 사랑은 오해다, 다시, 모든 사랑은 상상력이다
-르네 마그리트의〈연인〉

허구와 진실의 경계에 선 웨딩드레스의 역설
-소피 칼의〈웨딩드레스〉,〈거짓 결혼식〉
-송연재의〈결혼의 상처 Ⅰ〉

완전한 사랑은, 꿈꾸고 기억하는 것으로만 존재한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무제〉(완벽한 연인),〈무제〉

PART 3 치유할 수 없다면, 차라리 껴안아 버려

슬픔, 이겨 낼 수는 있어도 벗어날 수는 없다
-빈센트 반 고흐의〈슬픔〉
-마크 로스코의〈무제〉

상처는 가시처럼 기억에 박혀 아문다
-에바 헤세의〈액세션(Accession) Ⅱ〉,〈행 업(Hang up)〉

자살, 희망을 갈구하는 절망의 몸부림
-필립 라메트의〈사물들의 자살〉
-공성훈의〈담배 피우는 남자〉,〈낚시〉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것이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막대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광장〉

PART 4 사는 게 곤욕이라면, 생각의 틀 자체를 바꿔 봐

편견이 작동하면 성인도 속물로 보인다
-안드레 세라노의〈오줌 예수〉

못생겨서 아름다울 ‘수’도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춤추는 사람들〉,〈얼굴〉

현명하게 나이 들어 간다는 것
-루시안 프로이트의〈화가의 어머니〉
-메리 카사트의〈캐서린 켈소 카사트의 초상〉

그리움은 가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하는 것
-조지아 오키프의〈달로 가는 사다리〉
-안규철의〈먼 곳의 물〉

에필로그_그림은 어떻게 감동을 주는가
-우베 뢰쉬의〈풍크툼〉
-빈센트 반 고흐의〈해바라기〉
-에곤 실레의〈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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