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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미술관

천송희 2023. 10. 1. 05:28

사실 그림에 대해 아는게 없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TV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고흐의 몇몇 그림들과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루벤스의 내려지는 예수 정도. 그리고 작년에 읽었던 그림에 마음을 놓다라는 책에서 봤던 프리다칼로의 그림들. 내 수준이 이것밖에 안된다. 그림을 모르면서 그림을 알려는 노력도 안한다. 성경이라도 제대로 읽어서 무수히 많은 영감을 받아 그러졌던 종교적 회화, 조각들의 의미라도 파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난 정말 아무것도 못한다. 올 초에 프랑스에 다녀오신 울 시엄니도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 대부분의 내용과 의미를 작가가 누군지 몰라도 설명할 수 있으셨다고 했다. 그 얘기를 시누이를 통해 들었는데 내가 참 느끼는게 많았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교양수준을 알수 있는 척도로 보일만도 하고만. 난 정말 그림에 문외한이었구나.   지은이가 내 코드에 맞을것 같다며 선물해줬다. 난 이런 그로테스크한 어둡고 칙칙하고 음산한 그림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너는 나한테 이 책을 선물한거니? -_- 그런 몽환적인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림까지 그럴것이라는 편견을 버려라.   책은 개인과 사회라는 큰 주제로 나뉘어 그 문제점을 중심으로 그림이 선정되어 있다. 이 책에서 프리다 칼로가 또 등장하는것 보니 정말 별스러운 인생을 살다간 여자인가싶다. 남편이 어지간한 바람둥이인데다 칼로의 동생과도 부정을 저질렀다 한다. 뭐 이런 막장불륜인생의 피해자가 있는가. 그림에 그녀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마나 가학적인지. 나로써는 가늠할 수 없는정도의 상처인것 같다. 이것은 예술적 승화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민망할정도의 그림인 것이다. 몇번찔렀을 뿐인데 라는 작품은 남자가 프리다인지 누워있는 여자가 프리다인지... 아니면 그 둘다인지도 모를 묘한 인상을 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서 서리가 내린다던데  그 참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림으로 마치 복수를 하는 것처럼.   그밖에 인상깊었던 그림들이 몇점 더 있다. 모성의 무게에 눌린 어머니상. 조반니 세간티니의 악한 어머니 욕망의 징벌 의 그림은 세상이 우리의 어머니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 시선을 느낄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가. 어머니도 사람이고 여자인데 내가 사는 세상도 그저 국가 차원에서 출산을 장려하고 여자는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한다는 그런 차별적 잣대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죄인일까. 소박맞아 정당한 것일까. 그 보이지 않는 속박의 굴레는 여직껏 여성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것은 아닌지. 꼭 내가 어머니이여서 말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어머니의 역할에 너무 많은 짐을 지워주는 것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비단 이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명화에 그려진 어머니상 역시 그렇다. 섹스라는 쾌락만 즐기고 아이를 낳지 않는 어머니를 벌하는 그림인 욕망의 징벌만 봐도 그렇다. 애는 뭐 혼자 낳나? 아버지의 죄는 온데간데 없고 어머니만 때리는 이 잔혹한 그림 같으니. 그림을 그린 화가도 어머니가 없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하던데 그 영향이 그림에 많이 나타난듯 하다. 엄마의 울타리가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살지 않았으리. 그런 한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폼페이의 화산재로 화석이 되어버린 남녀를 보는것 같은 그림.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무제 . 삶과 죽음이 느껴지고 뭔가 가슴이 뭉클해오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 즉 연대함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재앙을 극복할 해결책 역시 사람들이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는것 같다. 같이 있으면 두려움은 반감된다. 자본주의 재앙에 맞서는 너와 나의 자세. 서로 의지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우리나라에 일어난 역병때문에 이러한 연대는 커녕 집안의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을 기세다. 연대는 고사하고 같이 있었다간 우리가족이 몰살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러다가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망하게 되는건 아닌지 심히 염려된다. 그림의 의도가 참으로 무색해지는 요즘이다. 그림을 통해 마음의 위안보다는 불안을 얻었다고 해야 맞을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별스럽고 기괴한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다. 왜 그런거지? 순자의 성악설이 그 이유를 뒷받침하는 걸까? 착한 모습보다는 악한 모습에,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추하고 더러운 모습에 열광하는 추잡한 인간내면이 있기때문이라고 고전이 나에게 말하는것 같다. 책은 재미있었고 나에게 많은 심상을 남겼다.  

미술은 인간을 투영하는 거울이 된다우리 안에 검은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들 흑 이 있으면 백 이 있고 빛 이 있으면 어둠 이 있다. 이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쉽게 잊곤한다. 특히 예술작품을 바라볼 때 그렇다. 예술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미술은 그 이름에도 아름다울 미(美)가 들어있듯이 언제나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고상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태초부터 지금까지 우리 주위에 악(惡) 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적은 없다. 특히 우리 안에는 더더욱 그렇다.이 책은 그 점에 주목한다. 어쩌면 우리에겐 선(善) 보단 악(惡) 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질투·자학·자살·공포·잔인함·죄의식·폭력·편견·위선·탐욕 등등의 어두운 감정들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이런 감정들을 감추며 통제하라고 배운다. 주위를 배려하고 선하게 행동하며 슬픔을 감추라고 말이다.이런 면에서 화가들은 일반인들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작품에선 우리가 억누르라고 배웠던 감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배신당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피로 얼룩진 그림에 담아낸 프리다 칼로, 사회지도층의 위선을 폭로한 게오르게 그로츠 등의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검은 미술관 의 1부는 우리 개개인의 추한 모습을 투영한 미술작품들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추한 사회제도와 감추고픈 역사들을 숨김없이 까발리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검은 개인을 그리다
희망과 자학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 카미유 클로델의 스케치 | 프리다 칼로, 「몇 번 찔렀을 뿐」
고통에 쫓기다 자살에 이르다 - 프리다 칼로, 「도로시 헤일의 자살」 | 에두아르 마네, 「자살」
바니타스, 죽음을 인정하다 - 바르텔 브루인, 「바니타스 정물」 | 피에터 클라에스, 「바니타스 정물」 | 이완, 「신의 은총」
공포와 불안에서 허우적대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 프랜시스 베이컨, 「벨라스케스의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화 습작」·「머리 IV」·「십자가 부분」 | 니콜라 푸생,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학살」 | 렘브란트 판 레인, 「가죽을 벗긴 소」
잔인함에 매혹되다 - 프란시스코 고야, ‘전쟁의 참화’ 연작·「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정신병자 수용소」·「곤봉 결투」
팜파탈, 죄의식의 희생양이 되다 - 율리우스 클링어, 「살로메」 | 중세시대 세이렌 조각상 |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여자, 남성중심주의에 갇히다 - 고등어, 「말을 하는 여자」·「구토하는 올랭피아」
어머니, 모성의 무게에 눌리다 - 조반니 세간티니, 「악한 어머니」·「욕망의 징벌」 | 막스 에른스트, 「세 명의 목격자(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화가) 앞에서 아기예수를 체벌하는 성모마리아」
가족, 서로를 옭아매다 - 파울라 레고, 「가족」·「무제」·「두 소녀와 개」

검은 사회를 그리다
전쟁의 폭력과 참상을 그리다 - 아르놀트 뵈클린, ‘전쟁’ 연작 | 조란 무시치,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다」
종교, 도그마가 되다 - 프라 안젤리코, 「최후의 심판」 제단화 중 ‘지옥’ | 한스 멤링, 「최후의 심판」 세 폭 제단화 중 ‘지옥’ | 조지 와츠, 「마몬」 | 켄트 헨릭슨, 「천상의 계획」·「교활한 만족」
편견은 차별을 낳는다 - 앙리 르노, 「그라나다 무어 왕의 즉결 처형」 | 한효석,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연작·「불평등의 균형 1」
위선과 이중성을 폭로하다 - 게오르게 그로츠, 「사회의 기둥들」·「생일 파티」 | 제임스 엔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엔소르」
자본주의, 폭력을 행사하다 - H. R. 기거, 「바이오메카노이드 1」·「에이리언 IV」 | 즈지스와프 벡신스키, 「무제」
가진 자, 더 많은 것을 원하다 - 히에로니뮈스 보스, 「수전노의 죽음」·「건초수레」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죽이다 - 벤 샨,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 헨리 푸젤리, 「몽마」
아이들, 경쟁에 내몰리다 - 전형진, 「그네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아이」·「미끄럼틀에 누워 있는 아이」 | 이재훈, 「Unmonument-이것이 현실입니까」
동물에게 인간의 법칙을 강요하다 - 이완, 「안녕 크리스」 | 천성길, 「소시지 돼지」·「누크 캐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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